제목이 호랑의 눈이라니

 

주디 블룸의 소설은 처음이다. 하지만 제목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읽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별처럼 떠 있는 호랑이의 눈을 말하는 걸까? 왜 호랑이일까? 데이비가 울프를 만나, 자기를 타이거로 소개하면서 등장하는 ‘호랑이’ 하지만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자 했던 데이비의 몸부림이 마치 어둠 속에서 인간의 시력보다 6배나 좋아지는 호랑이의 눈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누구나 금세 술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 아주 천천히 읽었다. 데이비의 마음을, 데이비가 처한 환경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삶은 고통과 슬픔을 먹고 산다

 

일상의 평화가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데이비와 제이슨이 하루아침에 아빠를 강도의 총에 잃은 상황이 그렇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고,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고, 어쩌면 그 가족에겐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 일은 일어났고, 그의 가족은 그렇게 남겨졌다. 가족을 잃는다는 게 어떤 일일까. 데이비는 15살, 어린 나이에, 작별 인사도 할 시간 없이 아빠를 잃었다. 이것은 어쩌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작별의 인사가 있는 작별이 덜 슬플 리 없다. 어쨌뜬 남은 사람들은 그 삶이 조금 더 고통스럽고 슬프더라도 결국은 살아가게 된다. 데이비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보면 데이비의 방황, 위험한 일을 찾아나서는 예를 들어 스키를 배우고 싶다거나, 협곡을 오르내리거나,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거나! 하나 같이 위험한 일을 수반하는 이 일이 그녀의 가족을 잠시 돌봐주고 있는 고모와 고모부에겐 위험천만한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자신의 슬픔을 끌어내는 데이비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눈으로 진실을 보고 싶어 하는 소녀.. 호랑아의 눈을 가진 데이비 말이다.

 

데이비가 뛰쳐나온 상실의 시대

 

소설을 읽다 보면 상실의 데이비를 만날 수 있다. 아버지를 잃고 며칠 째 음식도 거부하고, 잠만 자고, 씻지도 않고, 무기력한 데이비. 그만큼 아빠가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그녀의 엄마조차 남편을 잃은 갑작스러운 상실에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어린 제이슨은 아버지의 부재를 어렴풋이 느끼곤 있지만, 데이비보단 천진난만하다. 하지만 아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울컥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어린 애야, 싶다가도 차라리 데이비처럼 분노든, 화든, 삐뚤어진 마음으로든 표현하는 게 제이슨을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종종 든다. 무엇보다 나는 있는 힘껏 슬퍼하고 애도하는 데이비의 엄마, 데이비가 좋았다. 슬픔은 참는 거라든지, 슬픔은 안 좋은 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래도 그 슬픔 받아들이고, 충분히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아마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런 과정이 데이비가 아빠에게 일어난 사고를 친구에게 얼버무리다가 나중엔 솔직하게 얘기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인상적이다. 결국은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고야 마는, 그 시간이 그렇게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해서.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노래로 오디션을 보고, 그 오디션 합격, 성공적인 무대로 슬픔을 막 뛰쳐나온 데이비를 보는 과정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잘하고 있어! 데이비!

 

우리는 내 눈 속 깊은 슬픔을 봐 줄 사람을 기다린다

 

정말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같은 슬픔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는 그 슬픔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데이비와 울프처럼. (사실 울프가 데이비가 자원봉사를 하는 아저씨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하아, 세상이 왜 이렇게 좁지? 하고 사실 아주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나는 아주 단순한 데이비의 행동만으로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주는 울프가 좋았다. 나 슬퍼, 내가 아버지를 잃었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사람.
데이비의 눈 속에 슬픔을 알아봐준 사람. 나는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 나의 슬픔을 알아봐 준 바로 그 한 사람이 절망에 빠진 데이비의 희망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품고 있었을 데이비가, 호랑이의 눈을 가진 데이비가 좀 더 용기 있게, 그리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힘든 시련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던 이 멋진 소녀를 만나 정말 즐거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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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좋은 일

 

일단 제목이 참 좋았다. ‘뜻밖에’가 이렇게 두근두근한 단어였구나. 정혜윤 피디가 쓴 <침대와 책>을 통해 책 읽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알게 됐다. 책이라는 게 이렇게 놀라운 도구구나,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정혜윤 피디의 신작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기대감이 컸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하고. 샤를 글레르의 <홍수>라는 그림을 표지로 쓴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폐허의 도시를 빛을 내며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날아가는 두 천사의 이미지. 이 책의 내용 역시, 그러한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리라 기대감이 높아졌다.

 

찌그러지지 않게 사는 힘 “덕분에” -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나이를 먹을수록 좀 마음(?) 편하게 사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적당히라는 말이다. 적당히, 대충대충, 좋은 게 좋은 거, 이렇게 중도를 지키며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는 때문에다. 적당한 남 탓이라고 해야 할까? 나로부터 시작되는 문제는 해결할게, 하지만 상대방 탓, 세상 탓도 무시할 순 없잖아? 이렇게 살면 마음은 편한지 모르겠지만 행복, 기쁨 따위는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다. 행복이라는 건 거저 얻어지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명상록에 적혀 있는 ‘덕분에’라는 말은 새삼스럽게도 참으로 놀라웠다.

 

“기쁨은 희귀하므로 웃음과 기쁨을 줄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기쁨은 오래가는 감사의 마음과 관련이 있다.” (p93)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 명상록의 서문을 옮겨 놓은 글을 보면서 나는 잠시 책을 덮고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특별해지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억에서 잊힌 사람들, 이제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나와 단 한 번의 눈맞춤이라도 그렇게 스쳐갔던 사람들의 한 가지는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니까. 나 역시 이렇게 덕분에로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은 타인의 모습에서 종종 자신의 얼굴을 본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습에서 내 얼굴을 발견하면 행복할 것이다.

어떤 얼굴, 목소리, 손짓, 표정, 이름에 대한 따스한 기억은 선물이다.

그것들이 마음의 어둠속에서 찬란하게 펼쳐질 때 기억은 구원이다.

누군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자신과 삶을 바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103)

 

어둠 속에서 더 사랑할 줄 알았다 –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얼마 전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영화까지 찾아서 봤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최고로 손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혜윤 피디의 글을 보면서 위로와 용기 그리고 품위라는 주제로 다시 한 번 소설을 음미하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이 내게 계속 울림을 줬던 건.. ‘용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주어진 인생, 뻔한 인생의 결과가 눈앞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용기를 내며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다. 유한한 인생 속에서도 클론들이 보여준 사랑과 우정,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무궁무진한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그들에 비하면 나는 이렇게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 어둠 속에서도 현재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던 이들의 용기, 그것이 품위 있는 인생이었다는데 깊은 공감이 갔다.

 

<뜻밖의 좋은 일>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두 권의 책이었다. 작가의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머리가 인간의 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유는

희망, 기쁨, 사랑, 우정을 배우기 위해서다” (p61)

 

그녀의 말대로 이 책에는 희망과 기쁨, 사랑과 우정..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 테라피들로 가득하다. 책이 그녀에게 들려준 인생의 이야기가 이렇게 또 한아름 쌓여가나 보다. 소중한 책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게 6월의 내게 일어난 <뜻밖의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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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촛불이다

 

2017년 봄.

바야흐로 봄이 왔다. 어느 때와는 다른 봄이었다.

<우리가 촛불이다>는 바로 나의 봄, 너의 봄, 우리의 봄.

촛불의 기적을 그날의 기억을 붙잡아 둔 책이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재판관의 입에 모든 주의가 집중된 그날을 기억한다.

박근혜의 그날이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

그리고 세 번의 그러나 속에 강하게 외친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

<우리가 촛불이다>는 이러한 결과를 우리가 거저 얻은 것이 아님을,

세월이 흘러 그 의미가 조금씩 잊히기 전에 기억하게 해준 가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2016년 추운 겨울,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따뜻했던 2017년 봄이 생각났다.

또 그 현장에 나가 정말 하나의 촛불이 되었던 경험이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무려 1700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광장에서 외친 그 한마디 한마디가

결국엔 바뀌었고,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그 촛불은 남녀노소, 나이와 국경, 세대와 갈등을 초월해

모두가 한 나라를 위해 가만히 부르짖었던

정말 소리없는 아우성이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나 또한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눈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지만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

기어코 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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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는 것 같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제목을 보는 순간 아버지의 전부를 보는 것 같았다. 모든 시들이 다 소중하고 주옥같았다. 아버지를 두고 있는 우리 모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낯설면서도 어려운 이름이 아마 아버지 아닐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러한 것인가.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오랜만에 아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아버지의 마음에 다가가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제 인다. 아버지도 울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큰 산이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엔 특히 그랬고,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하게 될 때쯤, 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낮아질 때쯤, 이제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되었던 그때를 내가 겪게 될 때 즈음. 그제야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가만히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게 된 것 같다. 바로 이 책 덕분에.

 

누군가의 기원이 된다는 것

 

누군가의 기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세상에 낳아주었기에 기원이 된 아버지, 한때는 내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것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기를 말이다. 가만히 떠올려 보면, 세상살이의 힘듦과 고락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화를 참아내고, 분노를 삭여야 했을까. 사회생활 좀 해본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해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는지 이제야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때로는 심한 불평과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가, 술잔을 끊임없이 기울이는 게 고된 마음을 달래는 일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조금도,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라는 사람의 무게를 안다. 이것이 시간이 흘러서인지, 내가 어른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느 순간 걸었던 그 길이 결국엔 나 또한 걸어가야 하는 길임을 어렴풋이나마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긴 칼을 가진 무사처럼 허둥대다가 당했다

 

나의 기원이었던 아버지는 언젠가 죽는다. 내 곁을 떠나겠지. 내가 대학가는 것도 보고, 취직하는 것도 보고, 결혼하는 것도 보고, 손주들까지 번쩍 들어 올렸으면서. 나이가 든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건 ‘병’이다.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곤 하지만, 돈으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병’. 그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거의 없다. 내가 그 죽음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더라도, 내가 그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 구절이 너무 슬펐다. 긴 칼을 가진 무사처럼 허둥대다가 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 사람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떠나보내는구나..

 

지금 아빠에게는 어떤 아빠가 필요할까

 

우리나라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떤 날은 학교도 가기 싫고, 어떤 날은 출근도 하기 싫고, 또 어떤 날은 잠만 내내 자고 싶고.. 이런 사소한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게 아버지의 삶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그랬다. 참 열심히 살았다. 악착같이 살았다. 그렇게 해서 세 자녀를 키웠다. 그게 누구보다 좋은 거, 누구보다 최고의 것을 해준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아버지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가 딱히 필요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그래서 아빠가 없어진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아빠가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일지 사실 감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빠에게도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아주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옆에 존재해주기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그런 존재.
세상의 고독을 혼자 짊어지고 가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는 왜 이렇게 슬픈가. 자식이란 평생 단 한 번도 아버지가 의자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인가.
아버지를 내가 백퍼센트 다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더 내 곁에 있어 달라. 바보 같은 모습이어도 좋다.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 당신 이제 울어도 괜찮다. 아버지, 당신은 그냥 나의 아버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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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추사를 아는 기쁨을 주는 책

 

유홍준 교수는 이 책을 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추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묵직하다. ‘추사’ 하면 ‘김정희’는 내 머릿속엔 공식처럼 자리 잡은 말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추사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추사체, 세한도, 금석학.. 참으로 단편적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추사 김정희>를 통해서 나는 추사를 알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추사를 안다는 건 기쁜 일이라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모두가 그런 기분을 느껴 봤으면 좋겠다. 유홍준은 <추사 김정희>는 추사라는 한 인물의 생애를 집요하게 주목했고, 우리가 알아야 할 추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그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참으로 가치 있는 책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일러둔다.

 

우리보다 먼저 추사를 사랑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후지쓰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후지쓰카의 존재였다. 김정희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후지쓰카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알기 전에 이미 추사의 존재를 알고, 추사를 좇았던 한 일본인. 청조 고증학 연구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의 결론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청조한 연구의 제1인자는 추사 김정희이다” 그가 수집한 추사의 작품이 1만 5천여 건. 이 얼마나 집요한 연구일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후지쓰카는 자신이 모든 추사의 자료 중 일부를 방공호에 저장해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쿄 공습 때도 무사히 보존되어 우리에게 전해질 정도였다니, 그가 얼마나 김정희의 자료를 금지옥엽 다뤘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심지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사의 <세한도> 역시 후지쓰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는 추사를 향한 그의 학문적 열정이 얼마나 순수했는지 느껴져서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후지스카의 통 큰 결정이 우리나라에 추사박물관을 세우는데도 도움을 주었다는 것에서는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역사는 꾸준한 관심과 연구자에 의해 진화해나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이렇게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 나에게 역사란 누군가가 정리해놓은 것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대개 이러한 관심과 관찰, 탐구와 발견에 의해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또한 진화되어 온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지쓰카와 같은 단 한 사람의 관심과 연구가 그의 아들에게 그리고 그 모든 연구가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기까지 몇 백 년이 지난 뒤에도 이토록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의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잔잔히 불고 있는 완당바람에 대하여

 

조선 후기 세기의 영향력을 발휘했던 완당바람도 인상적이었다. 추사는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겪었지만 그로 인해 누구보다 세상에 대해 열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추사의 바람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항인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과 교유한 일이며, 그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침을 전한 일도 추사였기 때문에 그 파급력이 이렇게 퍼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추사는 평생 글씨에 대한 그의 집념에서 보여주듯 엄격하고 교육적이었다. 예림갑을록 묵진, 화루 8인에 대한 평가에서 대단히 예리한 추사의 평가는 당시 묵장의 영수로 통하던 조희룡과 무척 대조적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추사 김정희>를 읽기 전엔 추사가 그저 꼬장꼬장한 성격의 꽉 막힌 사람으로 보였는데 추사가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와 고집이 결국에는 새로운 문화를 여는 토대가 된 것은 아닐까 유추해볼 수 있었다. 추사가 있었기에 이들이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추사라는 한 사람이 조선 후기 시서화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진 대목이다.

 

추사 김정희를 안다는 것 

 

글씨에는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에 부침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추사의 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추사의 글씨가 워낙 독창적이고 개성적이고, 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추사체’라는 이 단어로 그가 남긴 모든 글씨체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 어느 순간에도 완벽을 잃지 않았던 추사의 성격, 마지막 한 획 조차도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았던 추사의 성격이 결국 전무후무한 추사체라는 글씨를 만든 것이 아닐까. 추사라는 멋진 인물을 만나서 참으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무언가에서 대가를 이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추사가 그저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다는 것, 추사의 끈질긴 열정이 지금의 추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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