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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17 당신 이제 울어도 괜찮다
  2. 2018.05.16 완당바람을 느끼며

 

 

당신은 우는 것 같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제목을 보는 순간 아버지의 전부를 보는 것 같았다. 모든 시들이 다 소중하고 주옥같았다. 아버지를 두고 있는 우리 모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낯설면서도 어려운 이름이 아마 아버지 아닐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러한 것인가.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오랜만에 아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아버지의 마음에 다가가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제 인다. 아버지도 울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큰 산이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엔 특히 그랬고,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하게 될 때쯤, 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낮아질 때쯤, 이제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되었던 그때를 내가 겪게 될 때 즈음. 그제야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가만히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게 된 것 같다. 바로 이 책 덕분에.

 

누군가의 기원이 된다는 것

 

누군가의 기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세상에 낳아주었기에 기원이 된 아버지, 한때는 내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것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기를 말이다. 가만히 떠올려 보면, 세상살이의 힘듦과 고락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화를 참아내고, 분노를 삭여야 했을까. 사회생활 좀 해본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해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는지 이제야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때로는 심한 불평과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가, 술잔을 끊임없이 기울이는 게 고된 마음을 달래는 일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조금도,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라는 사람의 무게를 안다. 이것이 시간이 흘러서인지, 내가 어른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느 순간 걸었던 그 길이 결국엔 나 또한 걸어가야 하는 길임을 어렴풋이나마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긴 칼을 가진 무사처럼 허둥대다가 당했다

 

나의 기원이었던 아버지는 언젠가 죽는다. 내 곁을 떠나겠지. 내가 대학가는 것도 보고, 취직하는 것도 보고, 결혼하는 것도 보고, 손주들까지 번쩍 들어 올렸으면서. 나이가 든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건 ‘병’이다.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곤 하지만, 돈으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병’. 그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거의 없다. 내가 그 죽음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더라도, 내가 그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 구절이 너무 슬펐다. 긴 칼을 가진 무사처럼 허둥대다가 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 사람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떠나보내는구나..

 

지금 아빠에게는 어떤 아빠가 필요할까

 

우리나라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떤 날은 학교도 가기 싫고, 어떤 날은 출근도 하기 싫고, 또 어떤 날은 잠만 내내 자고 싶고.. 이런 사소한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게 아버지의 삶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그랬다. 참 열심히 살았다. 악착같이 살았다. 그렇게 해서 세 자녀를 키웠다. 그게 누구보다 좋은 거, 누구보다 최고의 것을 해준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아버지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가 딱히 필요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그래서 아빠가 없어진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아빠가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일지 사실 감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빠에게도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아주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옆에 존재해주기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그런 존재.
세상의 고독을 혼자 짊어지고 가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는 왜 이렇게 슬픈가. 자식이란 평생 단 한 번도 아버지가 의자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인가.
아버지를 내가 백퍼센트 다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더 내 곁에 있어 달라. 바보 같은 모습이어도 좋다.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 당신 이제 울어도 괜찮다. 아버지, 당신은 그냥 나의 아버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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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추사를 아는 기쁨을 주는 책

 

유홍준 교수는 이 책을 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추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묵직하다. ‘추사’ 하면 ‘김정희’는 내 머릿속엔 공식처럼 자리 잡은 말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추사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추사체, 세한도, 금석학.. 참으로 단편적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추사 김정희>를 통해서 나는 추사를 알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추사를 안다는 건 기쁜 일이라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모두가 그런 기분을 느껴 봤으면 좋겠다. 유홍준은 <추사 김정희>는 추사라는 한 인물의 생애를 집요하게 주목했고, 우리가 알아야 할 추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그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참으로 가치 있는 책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일러둔다.

 

우리보다 먼저 추사를 사랑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후지쓰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후지쓰카의 존재였다. 김정희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후지쓰카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알기 전에 이미 추사의 존재를 알고, 추사를 좇았던 한 일본인. 청조 고증학 연구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의 결론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청조한 연구의 제1인자는 추사 김정희이다” 그가 수집한 추사의 작품이 1만 5천여 건. 이 얼마나 집요한 연구일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후지쓰카는 자신이 모든 추사의 자료 중 일부를 방공호에 저장해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쿄 공습 때도 무사히 보존되어 우리에게 전해질 정도였다니, 그가 얼마나 김정희의 자료를 금지옥엽 다뤘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심지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사의 <세한도> 역시 후지쓰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는 추사를 향한 그의 학문적 열정이 얼마나 순수했는지 느껴져서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후지스카의 통 큰 결정이 우리나라에 추사박물관을 세우는데도 도움을 주었다는 것에서는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역사는 꾸준한 관심과 연구자에 의해 진화해나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이렇게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 나에게 역사란 누군가가 정리해놓은 것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대개 이러한 관심과 관찰, 탐구와 발견에 의해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또한 진화되어 온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지쓰카와 같은 단 한 사람의 관심과 연구가 그의 아들에게 그리고 그 모든 연구가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기까지 몇 백 년이 지난 뒤에도 이토록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의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잔잔히 불고 있는 완당바람에 대하여

 

조선 후기 세기의 영향력을 발휘했던 완당바람도 인상적이었다. 추사는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겪었지만 그로 인해 누구보다 세상에 대해 열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추사의 바람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항인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과 교유한 일이며, 그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침을 전한 일도 추사였기 때문에 그 파급력이 이렇게 퍼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추사는 평생 글씨에 대한 그의 집념에서 보여주듯 엄격하고 교육적이었다. 예림갑을록 묵진, 화루 8인에 대한 평가에서 대단히 예리한 추사의 평가는 당시 묵장의 영수로 통하던 조희룡과 무척 대조적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추사 김정희>를 읽기 전엔 추사가 그저 꼬장꼬장한 성격의 꽉 막힌 사람으로 보였는데 추사가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와 고집이 결국에는 새로운 문화를 여는 토대가 된 것은 아닐까 유추해볼 수 있었다. 추사가 있었기에 이들이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추사라는 한 사람이 조선 후기 시서화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진 대목이다.

 

추사 김정희를 안다는 것 

 

글씨에는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에 부침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추사의 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추사의 글씨가 워낙 독창적이고 개성적이고, 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추사체’라는 이 단어로 그가 남긴 모든 글씨체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 어느 순간에도 완벽을 잃지 않았던 추사의 성격, 마지막 한 획 조차도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았던 추사의 성격이 결국 전무후무한 추사체라는 글씨를 만든 것이 아닐까. 추사라는 멋진 인물을 만나서 참으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무언가에서 대가를 이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추사가 그저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다는 것, 추사의 끈질긴 열정이 지금의 추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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