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좋은 일

 

일단 제목이 참 좋았다. ‘뜻밖에’가 이렇게 두근두근한 단어였구나. 정혜윤 피디가 쓴 <침대와 책>을 통해 책 읽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알게 됐다. 책이라는 게 이렇게 놀라운 도구구나,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정혜윤 피디의 신작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기대감이 컸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하고. 샤를 글레르의 <홍수>라는 그림을 표지로 쓴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폐허의 도시를 빛을 내며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날아가는 두 천사의 이미지. 이 책의 내용 역시, 그러한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리라 기대감이 높아졌다.

 

찌그러지지 않게 사는 힘 “덕분에” -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나이를 먹을수록 좀 마음(?) 편하게 사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적당히라는 말이다. 적당히, 대충대충, 좋은 게 좋은 거, 이렇게 중도를 지키며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는 때문에다. 적당한 남 탓이라고 해야 할까? 나로부터 시작되는 문제는 해결할게, 하지만 상대방 탓, 세상 탓도 무시할 순 없잖아? 이렇게 살면 마음은 편한지 모르겠지만 행복, 기쁨 따위는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다. 행복이라는 건 거저 얻어지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명상록에 적혀 있는 ‘덕분에’라는 말은 새삼스럽게도 참으로 놀라웠다.

 

“기쁨은 희귀하므로 웃음과 기쁨을 줄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기쁨은 오래가는 감사의 마음과 관련이 있다.” (p93)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 명상록의 서문을 옮겨 놓은 글을 보면서 나는 잠시 책을 덮고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특별해지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억에서 잊힌 사람들, 이제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나와 단 한 번의 눈맞춤이라도 그렇게 스쳐갔던 사람들의 한 가지는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니까. 나 역시 이렇게 덕분에로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은 타인의 모습에서 종종 자신의 얼굴을 본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습에서 내 얼굴을 발견하면 행복할 것이다.

어떤 얼굴, 목소리, 손짓, 표정, 이름에 대한 따스한 기억은 선물이다.

그것들이 마음의 어둠속에서 찬란하게 펼쳐질 때 기억은 구원이다.

누군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자신과 삶을 바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103)

 

어둠 속에서 더 사랑할 줄 알았다 –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얼마 전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영화까지 찾아서 봤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최고로 손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혜윤 피디의 글을 보면서 위로와 용기 그리고 품위라는 주제로 다시 한 번 소설을 음미하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이 내게 계속 울림을 줬던 건.. ‘용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주어진 인생, 뻔한 인생의 결과가 눈앞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용기를 내며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다. 유한한 인생 속에서도 클론들이 보여준 사랑과 우정,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무궁무진한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그들에 비하면 나는 이렇게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 어둠 속에서도 현재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던 이들의 용기, 그것이 품위 있는 인생이었다는데 깊은 공감이 갔다.

 

<뜻밖의 좋은 일>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두 권의 책이었다. 작가의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머리가 인간의 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유는

희망, 기쁨, 사랑, 우정을 배우기 위해서다” (p61)

 

그녀의 말대로 이 책에는 희망과 기쁨, 사랑과 우정..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 테라피들로 가득하다. 책이 그녀에게 들려준 인생의 이야기가 이렇게 또 한아름 쌓여가나 보다. 소중한 책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게 6월의 내게 일어난 <뜻밖의 좋은 일>이었다. 

'홀로(獨)읽기(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둠속에서 더욱 빛나는 호랑이의 눈처럼  (0) 2018.06.12
우리가 촛불이다  (0) 2018.05.31
당신 이제 울어도 괜찮다  (0) 2018.05.17
완당바람을 느끼며  (0) 2018.05.16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