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스미노 요루

 

나는 매일 서점 사이트를 방문한다. 

서점에 갈 시간이 없어지면서 새로 생긴 습관이다. 

오늘은 무슨 책이 나왔나.. 어떤 작가가 신작을 냈나.. 

보면서 읽을 책 목록을 리스트업하는 게 소소한 취미랄까.

 

얼마 전 신간에 나의 시선을 유난히 끌었던 책이 한 권 있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에엑. 이게 뭐야! 한참을 들여다 봤다. 아마도 불쾌한 얼굴로?  

엽기적이야, 엇? 역시 일본스럽네.. 췌장을 먹고 싶다니, 무슨 내용이지?

뭔가 기분이 묘했지만, 분명한 건 읽어 보고 싶지 않아였다는 것.  

일본서점 대상이라는 내가 혹 할만한 타이틀을 달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노림수에 완벽하게 걸려들고 말았다. 

호기심 때문에 결국 나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나는, 

뭔가 새로운 걸 읽고 싶었던 나는,

결국 이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주변의 두 사람에게 이 책을 권했다. 

둘의 반응? 놀랍지도 않다. 나와 똑같았다. 

응? 제목이 뭐? 뭐라고? 그게 뭐야? 책이냐?


마지막까지 이 책이 매력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옮긴이가 옮겨 놓은 글 때문이다.

 

"소설 자체가 우선 독자의 눈에 띄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이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이것이라면 독자가 시선을 던져줄지도 모른다고 느꼈습니다. 

주인공 두 사람에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말하게 하기 위한 소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복선을 만들고 

또한 이 말이 나오기까지 독자가 싫증나지 않게 대화를 연구해가며 썼습니다. 

제목이 먼저 있었고, 거기에 스토리가 따라오면서 완성된 소설인 셈입니다"

 

그렇게 나는 스미노 요루라는 작가에게 낚였다.

하지만 그래서 기뻤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몇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표현이라는 강제와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직선적이며 직접적인 수단이지만

사실 세상을 살다 보면 말로만은 다 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게다가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통용된다.

가족, 애인, 친구 등.. 각각의 인생에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만.

표현이라는 게 그렇다. 너무 과해도 문제, 너무 못해도 문제..

사랑도 표현해야 알지, 말을 해야 알지, 너무나도 다른 인격체가 만나

이해하는 척, 이해되는 척하는 합리화된 수단.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말'에 대한, '표현'에 대한,

치밀한 고뇌와 고민이 담긴 소설이라고 다시금 정의하고 싶다.

은유의 시대, 사색의 시대를 꿈꾸는 작가의 좀 더 섬세한 언어랄까.

 

소설 속 하루카와 사쿠라의 관계도 참 밋밋하다.

첫사랑이라든가, 뭔가 떨린다든가, 그런 상황보다는 미지근하다고 할까.

소설에서는 모든 게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강조하지만

좋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스며들게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고,

그것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렇게...

 

사랑의 언어라는 분류가 있다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분인,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보다

만 가지 의미를 가진 아주 진정성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와 사쿠라.. 아아.. 이렇게 흔하디 흔한 이름을 가진 두 주인공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기상천외한 말, 

세상에 없던 말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얼마나 많은 반전과 작가의 뒷통수에 시달려야 하는지.. 

신선하면서도 짜릿한 소설이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 한마디를 향한 작가의 무서운 집념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AND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양창순

 

책장을 슥- 넘겨 보니, 이 책이 나온 게 2012년.

당시 분명 나는 이 책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거참, 건방지네...

그러니까 당시 내가 아는 '까칠'이라는 단어는 그런 거였다. 

틱틱대고, 무뚝뚝하고, 뭐 그런 것..

내 주변의 까칠한 그 혹은 그녀들을 떠올리고는 에이~ 진짜 별로야. 라고.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5년 뒤..

나는 주섬주섬 이 책의 제목을 검색 창에 꾹꾹 채워 넣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부쩍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까칠하게, 살아야 겠다고, 그래야겠다고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알수록,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얻은 결론은 변화를 원한다면,

결국 바뀌어야 하는 건 나라는 것이다.

 

어렸을 땐, 그런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착한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앟은 척..

나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나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될 거야

하지만 이것은 결국 과도한 스트레스와 분노라는 부메랑으로 나에게 돌아온다.

 

한동안은 좋은 게 좋은 건지 알았다.

웃고 있으면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엔 수천 가지 색깔이 있고, 수만 가지 감정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것을 일일이 충족시킬 수 있을 수도,

그것을 포용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스치면 안녕할 여러 사람에게 연연하지 말고,

평생 내가 두고두고 보고 싶은 단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해지자.. 까칠해지자고 말이다.

나의 이 작은 다짐이, 10년 후의 나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AND


나는 곰처럼 살고
당신은 사람처럼 살다가
그 경계에서 만나자

그리고..
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자...


<곰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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